1902년은 고종의 즉위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. 고종은 1901년부터 칭경예식을 계획하고, 각국 공사들을 초대하여 대규모 행사를 치를 수 있는 관람시설과 연회장을 건립하라고 명하였습니다. 이를 통해 대한제국의 건재함을 알리고 근대국가의 면모를 대외적으로 알리고자 했습니다. 이 중 연회장이 바로 돈덕전이었습니다.
틀어진 고종의 계획
즉위 40주년 칭경예식은 1902년 10월 18일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수옥전의 화재 등으로 공사가 지체됨에 따라 그 해에는 칭경식을 치르지 못했습니다. 1903년 4월 6일 자 <황성신문>에 포기하지 않은 고종의 칭경예식 행사 절차가 상세히 보도되어 있습니다.
● 1903년 4월 27일 각국대사 영접
● 4월 28일 오후 2시 돈덕전에서 국서를 봉정
● 그날 저녁 8시에 저녁연회
● 4월 30일 오전 9시 환구단에서 칭경예식을 행한 후 돈덕전에서 점심 연회
● 여러 행사 후 5월 7일 오전 11시에 돈덕전에서 전체 행사 마무리
이 기사를 보면 고종 즉위 40주년을 그리는 칭경예식 행사의 주 무대가 돈덕전이며, 해를 넘겼지만 돈덕전이 칭경예식의 행사장으로 지정되어 있는 것을 보면 1903년 4월 이전에는 완공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.
결국 취소된 칭경예식
1904년 2월까지 몇 차례 연기된 칭경예식은 고종이 그토록 고대하고 공을 들였음에도 무심하게 완전히 취소되었습니다. 연기를 하고 취소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.
● <황성신문>에 발표된 행사일을 겨우 20일 앞둔 1903년 4월 10일 영친왕이 천연두를 앓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. 고종은 각국 공사를 비롯해 손님들을 초대해 접견한 다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다 행사를 가을로 연기하라 명합니다.
● 1907년 7월에 용암포 사건이 발생해 일본과 러시아의 관계가 경축행사를 거행할 수 있는 국제정세가 아니었습니다.
● 고종은 경축 행사를 끝까지 행사를 포기하지 않았지만,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청경예식은 완전히 취소되었습니다.
그 후 돈덕전은 외교를 위한 교류 공간이나 영빈관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. 순종의 황제즉위식이 열렸고, 외국사신들을 접견하거나 국빈급 외국인 방문 숙소로 활용되다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철거되었습니다. 덕수궁을 공원으로 조성하는 사업이 추진되면서 철거되고 그 자리에 어린이를 위한 놀이 공간이 들어선 것으로 추정됩니다.
5년 만에 공사 마무리
대한제국 외교의 무대였던 돈덕전은 2017년 발굴조사를 거쳐 약 5년 만인 지난해 공사를 마무리했습니다. 발굴 당시 출토된 바닥 타일, 벽돌 등 옛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모든 재료와 옛 사진 등을 분석해 건물의 위치를 정하고 외부 모습을 재건했다고 합니다.
문화재청은 9월 개관에 앞서 7월부터 돈덕전을 공개할 예정입니다. 경관 조명을 상시로 켜고 주변을 좀 더 정리하고 개방해 가까이서 건물을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.
◆ 돈덕전 위치- 덕수궁 석조전 뒤쪽에 있는 서양식 2층 건물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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